김민정 (Kim M.J.)
김세한 (Kim S.H.)
이현우 (Lee H.W.)
I. 서론
1. 연구 배경 및 필요성
과학기술 패권 경쟁하에서 각국 정부는 점진적 기술 개량 위주의 투자에서 벗어나 국가적 난제 해결과 파괴적 혁신을 위한 고위험‧고보상(High-Risk, High-Reward)형 연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1]. 대표 사례로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18]은 실패를 용인하는 프로그램 관리자(PM: Program Manager) 자율 모델을 통하여 인터넷, GPS 등 혁신적 기술을 창출하였으며, 유럽 연구위원회(ERC: European Research Council)[19,20]는 과학적 탁월성을 유일한 선발 기준으로 삼는 독립적 연구비 지원 체계를 구축하였다. 한편,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JST: Japan Science and Technology Agency)의 CREST‧PRESTO 프로그램[24,25]은 연구총괄(RS: Research Supervisor) 중심의 단계적 지원 모델로 주목된다.
우리나라 역시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2] 및 제5차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3]을 통해 임무 중심의 창의‧도전 연구 활성화를 주요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국가연구개발혁신법[4]의 취지에 따라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도전성을 장려하는 연구 생태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는 2026년 AI와 과학기술의 융합을 통해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범국가적 대형 프로젝트인 ‘K-문샷(K-Moonshot) 추진전략’을 확정하고 본격 가동하였다[5]. K-문샷은 2030년까지 연구생산성을 2배로 제고하고, 2035년까지 8대 전략 분야의 12대 국가 미션 완수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미션별 전담 프로그램 디렉터(PD: Program Director)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강력한 책임운영체계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R&D 정책 기조가 과거의 점진적‧추격형 성과 관리에서 벗어나, 파괴적 혁신을 지향하는 도전적 국가 미션 해결형으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6].
창의도전 연구는 기존의 점진적‧개량 중심 R&D와 차별화되는 개념으로, 극도의 불확실성을 내포하나 성공 시 기술적‧사회적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성과를 창출하는 탐색적 연구를 의미한다. 인공지능, 차세대 반도체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 중심 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안목에서의 고위험‧고보상형 전략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 논문 목적 및 구성
본고의 목적은 첫째, 창의도전 연구의 개념과 특성을 학술적‧정책적 관점에서 정의하고, 둘째, 국내외 주요국의 창의도전 연구 지원 정책 및 제도를 비교 분석하며, 셋째, ETRI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을 구체적 사례로 분석하여 국내 창의도전 R&D 활성화를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이다.
본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는 창의도전 연구의 개념과 전통적 R&D와의 차별성을 논의한다. Ⅲ장에서는 국내 창의도전 연구 정책 및 사업 현황을 서술하고, Ⅳ장에서는 주요국의 창의도전 연구 지원 체계를 비교 분석한다. Ⅴ장에서는 ETRI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의 구조, 성과, 의의를 상세히 분석하며, Ⅵ장에서 종합 시사점과 정책 제언을 제시한다.
II. 창의도전 연구의 개념 및 특성
1. 창의도전 연구의 정의
창의도전 연구는 특정 응용 목표에 구속되지 않고 연구자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수행하는 탐색적 연구개발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국제적으로는 프론티어 연구(Frontier Research), 탐색적 연구(Exploratory Research)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며[7,8], 공통적으로 다음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 불확실성과 도전성이다. 연구 목표 달성 여부가 사전에 보장되지 않으며 실패 가능성이 내재된 연구를 포함한다. 둘째, 패러다임 전환적 잠재력이다. 성공 시 기존 학문적‧기술적 경계를 넘어서는 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로, 점진적 개선(Incremental Improvement)이 아닌 도약적 발전(Transformative Breakthrough)을 지향한다. 셋째, 연구자 자율성이다. 하향식(Top-Down) 지시보다 상향식(Bottom-Up) 아이디어 발굴을 우선시한다[9]. 넷째, 장기 지원의 필요성이다. 주요 창의도전 연구 지원 프로그램은 단기 성과 압박을 피하기 위해 통상 장기적인 지원을 보장한다[7].
창의도전 연구는 전통적인 응용‧개발 연구와 여러 측면에서 차별화되며, 양자의 주요 차이는 표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표 1 창의도전 연구와 전통적 응용연구의 비교
국내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책적으로 이를 ‘혁신적‧도전적 R&D’로 규정하고 육성 체계를 정비하고 있으며[5], 한국연구재단(NRF)은 연구자 주도의 ‘도전적‧창의적 기초연구’ 지원을 통해 지식의 지평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10].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역시 ICT 기술 패권 확보를 위해 동일한 맥락의 혁신도전형 사업을 추진 중이며[11], 특히 ETRI는 ‘창의도전 이음투자’ 사업 등의 내부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 현장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제 과제화하는 ‘창의도전 연구’ 생태계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12]. 이러한 시도들은 공통적으로 연구자 자율성 기반의 탐색적 성격을 핵심 요소로 공유한다.
2. 국제적 논의 동향
최근 글로벌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 패러다임은 점진적 개량을 지향하는 ‘추격형(Fast-Follower)’ 모델에서 탈피하여,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는 ‘선도형(First-Mover)’ 체계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기존의 정형화된 R&D 관리 방식으로는 지정학적 위기 대응과 파괴적 혁신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국제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논의에서는 고위험‧고보상(High-Risk, High-Reward)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한 제도적 전제 조건으로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한다. 첫째는 연구자의 제안이 제도적 제약 없이 수용될 수 있는 ‘자율성 확보’이며, 둘째는 연구 과정에서의 정직한 실패를 지식 자산으로 축적하는 ‘수용적 평가 관점’이다. 마지막으로는 단기 성과 지표(KPI)에 매몰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안정적‧장기적 지원 체계’의 구축이다[1,8].
이러한 정책적 공감대는 주요국들로 확산되어,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과학기술 선도국들은 각국의 연구 역량과 국가적 미션에 맞춘 독자적인 창의 도전 연구 지원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연구 제안서의 형식을 파격적으로 간소화하고, 프로그램 디렉터(PD)의 전문적 통찰력에 근거한 신속 선발 제도를 도입하는 등 R&D 거버넌스의 근본적인 혁신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단순한 연구비 지원 확대를 넘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 생태계 조성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전환을 의미한다.
III. 국내 창의도전 연구 동향
1. 국내 R&D 정책 기조 변화
국내 R&D 정책은 과거의 추격형‧단기 성과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선도형‧임무 중심의 ‘혁신적‧도전적 R&D’ 체계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출연연의 연구 문화의 변수로 지목되던 PBS(Project Based System, 연구과제중심제도)는 2025년 7월 ‘단계적 폐지 및 임무 중심 전환’ 방침이 공식 확정됨에 따라, 2026년부터 NST 소속 출연연을 대상으로 향후 5년간의 단계적 폐지 작업이 본격 개시되었다[6]. 1996년 도입된 PBS는 연구자가 인건비 확보를 위해 외부 과제 수주에 매몰되게 함으로써 장기‧도전적 연구의 위축과 연구력 분산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해 왔다. 2025년부터 본격화된 PBS 폐지 및 인건비 구조 개편은 연구자가 과제 수주 압박에서 벗어나 본연의 임무인 장기‧창의‧도전적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안정적 연구 생태계 구축의 실질적인 동력이 되고 있다.
정부는 실패 가능성이 높으나 성공 시 파급효과가 막대한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혁신적‧도전적 R&D 육성 시스템’을 제도화하였다. 특히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창의적‧도전적 연구 지원의 법적 근거를 명시하고 있으며[4], 도전적 목표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연구 과정의 충실성과 방법론의 독창성이 인정될 경우 차기 과제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성실 실패’ 용인 기준을 강화하였다. 이는 연구 현장에서의 위험 회피 성향을 타파하고 고위험 연구로의 진입을 촉진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23~2027)’은 대한민국 R&D의 미래 방향을 ‘질적 성과’와 ‘도전적 투자’로 설정하고, 이를 12대 국가전략기술 확보와 직접 연계하였다[2]. 이에 발맞춰 ‘제5차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2023~2027)’은 연구자 주도의 창의연구 트랙을 대폭 확대하고, 특히 AI, 반도체 등 첨단 전략기술 분야에서의 창의도전형 임무 중심 R&D를 핵심 과제로 명시하였다[3]. 2026년부터 본격 가동된 ‘K-문샷 프로젝트’는 이러한 정책 기조를 구체화하려는 시도로서, 범국가적 난제 해결을 위한 고난도 연구에 집중 투자하는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5].
2. 주요 사업 현황
국가 차원의 창의도전 연구 지원은 포괄적인 기초연구를 넘어, 미래 디지털 패권을 좌우할 ICT 분야의 파괴적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ICT 분야 혁신도전형 R&D를 전담하며, AX(AI 전환) 엔진, 차세대 AI 반도체 및 양자 통신 등 파괴적 원천 기술 확보를 적극 지원 중이다[5,11].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Neuro-AI(신경-인공지능) 융합, 자가 진화형 AI 보안 체계 등 ICT 기반의 초고난도 산업 난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토너먼트형 경쟁 R&D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13].
정부출연연구기관 차원에서도 ICT 딥테크(Deep Tech) 선점을 위한 선도적 도전 연구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특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PBS 폐지와 임무 중심 전환이라는 정책 기조에 발맞춰, 자체 재원을 투입하는 ‘창의도전 이음투자’ 사업을 기관의 핵심 혁신 모델로 정착시켰다[12]. 이 사업은 연구자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고 국가 대형 R&D 및 고파급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브릿지(Bridge) 연구’ 체계를 제도화한 것으로, 파괴적 기술의 씨앗을 발굴하여 국가전략기술로 육성하는 실질적인 인큐베이팅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 프로그램도 출연연 주도의 혁신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14].
3. 제도적 특징 및 한계
국내 창의도전 연구 지원 체계의 제도적 특징으로는 첫째, 실패 용인 원칙이 기관‧사업별로 가이드라인 수준에서 도입되고 있으나, 통일된 법령 기준은 아직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 NRF의 자유공모형 기초연구사업이나 ETRI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에서 볼 수 있듯이 Bottom-Up 방식의 아이디어 발굴 구조가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패에 대한 부담으로 개인연구자의 활발한 아이디어 제안에 심리적 제약이 존재한다. 셋째, 창의도전형 R&D만을 독립적으로 집계하는 공식 통계 체계가 미비하여 정책 평가와 개선에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 다음 장에서는 국내 제도 개선에 참조할 수 있는 해외 주요국의 창의도전 연구 지원 체계를 비교 분석한다.
IV. 해외 주요국 창의도전 연구 동향
1. 미국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기초‧탐색 연구 지원의 핵심 기관으로서, 다양한 창의도전형 메커니즘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CAREER(Faculty Early Career Development Program)[15]는 신진 교수를 대상으로 기본 5년간 총 $400,000 이상을 지원하며, Intellectual Merit(지적 기여도)와 Broader Impacts(사회적 파급효과)를 핵심 심사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탐색적 고위험 연구를 위한 전용 메커니즘으로 EAGER(EArly-concept Grants for Exploratory Research)가 주목된다[16]. EAGER는 2년간 최대 $300,000(2025년 PAPPG 24-1 Supplement 1 개정 이후 $400,000으로 인상)의 소규모 지원을 제공하며, 프로그램 담당관(Program Officer)의 재량으로 외부 심사없이 지원 가능하여 초기 단계의 고위험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유연한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NIH 또한 R21 탐색‧개발연구 그랜트(Exploratory/Developmental Research Grant)[17]를 통하여 예비 데이터 없이 신청 가능한 고위험 탐색형 메커니즘을 운영하고 있는데, ‘High-Risk, High-Reward’를 명시적 지원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R21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연구과제(R01)와 달리 연구의 초기 단계에 초점을 맞추며,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거나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개념적 연구, 새로운 기술, 방법론, 도구 또는 장치의 개발, 특정 질병이나 건강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의 탐색 등을 목표로 최대 2년 동안 총 $275,000까지 지원한다.
1958년 설립된 DARPA[18]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창의도전 연구기관으로 평가된다. ARPANET(인터넷의 기원), GPS 기술, 스텔스 기술 등의 혁신적 성과를 창출한 DARPA 모델의 핵심은 PM의 전권(全權) 자율 운영 구조에 있다.
DARPA의 PM은 산‧학‧연 외부 전문가를 통상 3~5년의 한시 임기로 채용하여, 프로그램 기획‧예산 배분‧연구팀 선발‧조기 종료에 이르는 전권을 부여한다. 논문‧특허 수가 아닌 기술 도약(Technology Transition) 여부를 핵심 성과 지표로 채택하며, 실패를 허용하는 조직 문화가 제도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약 250여 명의 소규모 조직(DARPA FY2024 AFR 기준)이 FY2026~FY2027 기준 연간 약 $4.3~5.0 billion 규모의 예산을 운용하며, 6개 기술 사무소(BTO, DSO, I2O, MTO, STO, TTO)가 독립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 EU
ERC는 2007년 설립 이래 EU의 대표적 창의도전 연구 지원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19,20]. ERC의 핵심 철학은 ‘과학적 탁월성(Excellence Only)’을 유일한 선발 기준으로 삼는 프론티어 연구(Frontier Research) 지원이며, 응용 목적, 국적, 소속 기관을 배제하고 연구자 개인의 탁월성만이 평가 대상이 된다. ERC의 행정 지원은 유럽연구위원회 집행기구(ERCEA: European Research Council Executive Agency)가 담당하며, 연구 우선순위와 선발 기준은 22인의 저명 과학자로 구성된 과학위원회(Scientific Council)가 정치적 간섭 없이 전권으로 결정한다.
ERC는 연구자의 경력 단계에 따라 Starting Grant(최대 €1.5M/5년), Consolidator Grant(최대 €2.0M/5년), Advanced Grant(최대 €2.5M/5년), Synergy Grant(최대 €10M/6년)로 구성된 체계적 지원 구조를 갖추고 있다[20]. Horizon Europe(2021~2027) 기간 내 ERC에 배정된 예산은 약 €16billion(7년 총액, 전체 Horizon Europe 예산의 약 17%)이며, 연간 지원 규모는 약 €2.0~2.4billion에 달한다. 선발률은 약 10~12% 수준으로 보고되나, 유형별로 변동이 존재한다. 이러한 거버넌스 구조는 Regulation(EU) 2021/695(Horizon Europe 규정) [21]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Horizon Europe의 세 번째 혁신기둥(Pillar III)에 속하는 유럽혁신위원회(EIC)의 Pathfinder 프로그램[22]은 기술준비수준(TRL: Technology Readiness Level) 1~4단계를 대상으로 하는 고위험‧고보상 연구를 지원한다. 프로젝트당 최대 €4M(2026년 EIC Work Programme 기준 Pathfinder Open, Challenges는 동액), 최대 4년의 지원이 제공되며, 과학적 개념에서 혁신 기술로의 전환을 위한 전용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독일 학술연구진흥재단(DFG)의 Reinhart Koselleck 프로젝트[23]도 탁월한 연구 실적을 보유한 연구자가 위험성 높은 혁신 주제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용 메커니즘(최대 €1.25M/5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3. 일본
일본 JST의 전략적창조연구추진사업은 창의도전 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대표적 모델로서, 팀형 CREST[24]와 개인형 PRESTO[25]의 이중 트랙으로 운영된다.
CREST는 국가 전략목표에 부합하는 기초연구를 팀 단위로 지원하며, 1과제당 1.5억~5억 엔/5.5년 이내의 규모로 지원한다. PRESTO는 신진~중견 연구자의 독창적‧도전적 ‘배아기(Embryonic) 과학기술’ 연구를 개인 단위로 지원하며, 1과제당 약 3,000만~4,000만 엔/3.5년 이내 수준으로 지원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RS가 연구 방향 설정, 중간 개입, 실패 시 재기획 지원의 역할을 수행하는 점이 특징이다.
KAKENHI(과학연구비 조성사업) 체계[26] 내에도 도전적 연구 분야에 대해 개척(Pioneering)과 탐색(Exploratory)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매년 공모가 진행된다. 개척형은 더 큰 규모의 혁신적 연구를 목표로 하며 탐색형은 매우 탐색적인 성격의 초기 단계 연구를 각각 지원하는데, 개척형은 500만~2,000만 엔 규모로 3~6년 지원하며, 성과에 따라 차기 대형연구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탐색형은 500만 엔 이하, 2~3년 동안 다년도 기금(Multi-year Fund) 제도가 적용되어 연구기간 내 예산 집행이 비교적 유연하게 운영된다.
4. 중국
중국은 최근 ‘기초연구 10년 행동방안(2021~2030)’과 ‘제15차 5개년 규획(2026~2030)’을 기점으로, 기존의 추격형 연구에서 벗어나 ‘원천혁신’ 중심의 창의도전 연구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27]. 국가자연과학기금위원회(NSFC)[28]는 기초연구 전담 펀딩 기관으로서, 일반 프로젝트(面上项目), 청년과학기금(青年科学基金), 중점 프로젝트(重点项目), 중대연구계획(重大研究计划) 등 다양한 지원 유형을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NSFC는 2026년부터 지원 구조를 전면 개편하여 ‘청년 중심’과 ‘원천 연구 강화’를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파괴적‧도전적 아이디어를 선발하는 ‘비합의(Non-consensus) 과제 지원’과 고위험‧파괴적 특성을 가진 연구를 지원하는 원창탐색계획(原创探索计划, Original Exploration Project)을 운영함으로써 고위험‧고보상 연구를 장려한다. 아울러 청년 과학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청년과학기금을 확대하여 국가 전략 목표와 연계된 창의적 연구 생태계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창의도전 연구 지원의 관점에서 중국의 특성을 살펴보면, 전략 목표와의 강한 연계성이 두드러진다. NSFC의 중대연구계획은 국가 과학기술 전략 목표와 직결된 대형 기초연구를 지원하며, 국가 주도의 우선순위 설정이 뚜렷하게 작동한다. 이는 연구자 개인의 자유탐색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 NSF EAGER나 EU ERC와 대비되는 특성이다. 한편, 청년과학기금은 신진 연구자의 자유탐색형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트랙으로서, 창의도전 연구의 지원 구조와 가장 부합하는 사례로 판단된다.
다만, 중국의 기초연구 지원 체계는 정부 주도형 전략 과제의 비중이 높아 연구자 자율성 측면에서 여타 주요국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며, 중국 정부가 최근 국가자연과학기금 조례 개정을 통해 ‘신이정일(2년연속 미선정 시 신청 제한)’ 규정을 삭제[29]하는 등 연구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으나, 제도적인 실패 용인 문화는 아직은 정착 시도단계인 것으로 판단된다.
5. 주요국 비교 분석
주요국의 창의도전 연구 지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원칙은 표 2와 같이 정리된다. 첫째, 연구자 자율성의 제도적 보장이 창의도전 연구의 전제 조건으로 작동한다. 둘째, 실패를 허용하는 평가 문화 또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 셋째, 신진 연구자를 위한 전용 트랙이 운영된다. 넷째, 최소 3년 이상의 장기 지원을 통하여 단기 성과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표 2 주요국 창의도전 연구 지원 특성 비교
이러한 공통 원칙은 다음 장에서 분석할 ETRI 이음투자사업의 설계 논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나, 실질적인 운영 측면에서는 표 3과 같은 차별성을 가진다.
표 3 이음투자사업과 주요국 창의도전사업 비교
V. ETRI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
1. 추진 배경 및 경과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은 국내외 R&D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ETRI 차원의 전략적 자구책으로 출발하여, 2023년부터 기술료 수입 등 순수 자체 재원을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는 연계형 창의도전 연구개발 사업이다. 본 사업은 ‘소중한 씨앗으로부터 거목의 숲으로’라는 슬로건하에 장기적인 이음 투자를 통해 개인연구자의 창의적 아이디어로부터 차세대 미래전략기술을 발굴하고, 이를 ETRI 미래 먹거리로 성장‧발전시킴으로써 열정적‧창의적인 신진연구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TRI는 내부연구사업 내 창의도전 연구 투자 비중을 40%(2023) → 45%(2024) → 50%(2025)로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도전적 계획을 기관운영계획(2022~2025)[30] 내 기관 중점경영목표로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2023년 123억 원, 2024년 136억 원, 2025년 141억 원을 투입하여 씨앗형 도전연구 47건, 차세대주역 신진연구 21건, 신개념 선행연구(후속연구) 15건을 발굴하고 창의전문연구실 7개를 운영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투자는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창의도전 연구환경 조성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2. 사업 구조: 성장 사다리형 연결·성장 이음투자 체계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의 핵심 설계 원리는 성장 사다리형(Seed-to-Scale) 연계 구조이다. 즉, 개인 연구자의 창의적 아이디어 발굴로부터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본격 전문연구에 이르기까지, 기획연구 → 개념검증 심화연구 → 본격 전문연구의 단계적 성장 사다리가 그림 1과 같이 4개의 세부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세부사업별 특징 및 운영 철학을 국내외 유사 사업과 매핑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1 씨앗형 도전연구사업
씨앗형 도전연구사업은 각 직할부서별 중점전략 기술 분야를 기반으로 하되, 기존 중대형 과제가 다루지 못하는 음영지역의 신규 기획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초기 탐색 단계 지원 사업이다. 연구자의 창의성에 기반한 독창적 아이디어 발굴을 핵심 목표로 하며, 미국 NSF의 EAGER 메커니즘과 유사한 철학을 구현하고 있다.
2.2 차세대주역 신진연구사업
차세대주역 신진연구사업은 ETRI 내 젊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차세대 리더 그룹의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신진 연구자의 독립적 연구 역량을 배양하고, 미래의 창의도전 연구를 이끌 핵심 인재를 발굴‧지원하는 것이 본 사업의 목적이다. 이는 NSF CAREER, ERC Starting Grant, JST PRESTO 등 주요국의 신진 연구자 전용 창의도전 트랙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3 신개념 선행연구사업
신개념 선행연구사업은 씨앗형‧차세대주역 단계의 우수 성과를 발굴하여 후속 지원하고, 임무 달성 가능성을 검증하는 개념검증(Proof of Concept) 단계에 해당한다. 기술 성숙도(TRL) 향상을 통하여 본격 전문연구로의 전환 가능성을 평가하는 관문(Gateway)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EU ERC의 Proof of Concept 그랜트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한다.
2.4 창의전문연구실사업
창의전문연구실사업은 사업 내 최고 수준의 장기‧고위험 연구를 지원하는 단계로서, 미래 원천 기술의 선점과 국가 임무 해결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장기 집중 지원을 통하여 기초연구의 심화와 확장을 뒷받침하며,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서의 원천기술 확보를 지향한다. 이는 JST CREST의 장기 팀형 지원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되, 내부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3. 기술료 재투자 모델의 특징 및 의의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의 재원 구조는 기존의 정부 주도형 R&D 지원과 구별되는 독창적 특성을 지닌다. 즉, 정부 예산이 아닌 ETRI가 기술이전‧사업화를 통하여 창출한 기술료를 창의‧도전 연구에 재투자하는 자체 수입 재투자 모델이 채택되어 있다.
이러한 모델의 의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된다. 첫째, 지속가능성이다. 기술료 수입이 지속되는 한 외부 예산 지원 없이 창의도전 연구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둘째, 자율성이다. 일반 정부 R&D 사업과 달리 IITP, NRF 등 연구관리 전문기관을 거치지 않으므로, 관리 부담이 최소화되고 연구자 자율성이 극대화된다. 셋째, 선순환 구조이다. 우수한 기술이전 성과 → 기술료 수입 확대 → 창의연구 투자 확대 → 원천기술 창출 → 기술이전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지향된다.
4. 성과 분석 및 평가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은 단순 기초연구 사업이 아닌 창의‧원천형 R&D 모델로 기획연구부터 본격전문연구로 이어지는 이음(연계)형 사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반영한 특화된 성과창출 관련 논리모형을 적용하여 성과분석(’23~’25)을 진행한 결과, SCIE 52건, 특허등록 6건(출원 78건), 기술이전 8건, 후속연구사업 연계 등 정부투자견인 23건, 보유기술가치분석 735억 원의 성과가 확인되었다. 각 세부사업별로는 표 4와 같이 R&D 혁신을 통한 연구생산성 향상 분야에서의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표 4 세부사업별 주요성과 및 시사점
| 구분 | 주요성과 | 시사점 |
|---|---|---|
| 씨앗형 도전연구 | 이음투자사업 전체(3.71건) 대비 2.23배 우수1) | 단기간에 기술 아이디어 권리화 |
| 차세대 주역 신진연구 | 동 시기 과기부 R&D사업 대비 1.33배 우수2) | 신진 연구자의 연구 성과 확산 및 교류 활성화 |
| 신개념 선행연구 | 국가연구개발사업(0.88건) 대비 1.8배 우수3) | 양자, 인공지능 등 기술 포트폴리오 다변화 및 선제적 기술 점유 |
| 창의전문 연구실 | 국가연구개발사업(0.77%) 대비 3.96배 우수4) | 연구 성과의 사업화 효과 확인 및 기업과의 기술이전·협력 |
VI. 결론
본고의 국내외 동향 및 사례 분석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주요 시사점이 도출되었다.
첫째, 창의도전 연구의 국제적 수렴과 다양성이다. 미국 DARPA의 PM 자율 모델, EU ERC의 Excellence Only 원칙, 일본 JST의 RS 멘토링 체계는 연구자 자율성‧실패 용인‧장기 지원이라는 공통 원칙을 각국의 제도적 맥락에 맞추어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국가별 거버넌스 구조와 재원 체계는 상이하나, 창의도전 연구의 핵심 조건에 관한 공감대는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둘째, 국내 제도의 과도기적 위치이다. 국내 창의도전 연구 지원 체계는 아직 실패 용인의 법령 기반 구축과 연구자 자율성의 실질적 보장 측면에서 선진국 대비 개선의 여지가 존재한다. 또한, 창의도전형 R&D를 독립적으로 집계하는 통계 체계의 미비도 정책 효과 분석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셋째, ETRI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의 선도적 모델 가치이다. 본 사업은 기술료 기반 자체 투자라는 독창적 재원 구조와 함께, 기술개념 제안 및 기획연구, 개념검증 심화연구, 본격 전문연구단계로 연결되는 성장 사다리 연계 체계를 통하여 국내 출연연 창의도전 R&D의 자율기획형 모델로서, 출연연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창의도전 연구는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국가 혁신 역량의 근간을 이루는 전략적 R&D 유형이다. 주요 선진국은 DARPA, ERC, JST PRESTO 등 독창적인 지원 모델을 통하여 창의도전 연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패러다임 전환적 혁신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PBS 폐지, 혁신도전형 R&D 체계 도입, 기초연구 투자 확대 등 국내의 제도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ETRI 창의도전 이음투자사업은 기술료 기반 자체 투자와 4단계 성장 사다리 구조를 통하여 출연연 자율기획형 창의도전 R&D의 선도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다만, 연구자의 창의성에 기반한 도전적 아이디어가 충분히 구체화 되어 미래 먹거리로 발전될 수 있도록 연구기간 및 지원 규모의 확대, 지원 대상 선정 및 운영의 자율성, 실패 용인 프로세스 적용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를 반영한 ETRI 이음투자사업의 지속적 운영과 고도화는 국내 창의도전 R&D 생태계의 발전에 중요한 실증적 기반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용어해설
K-문샷(K-Moonshot) AI와 과학기술을 융합하여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고 과학기술 혁신을 가속화하는 범국가 프로젝트. 2030년까지 연구 생산성을 2배 높이고, 2035년까지 첨단바이오, 미래 에너지, 피지컬 AI, 우주, 양자, 소재, AI, 반도체 등 8대 분야 12대 국가 미션 해결이 목표
12대 국가전략기술 기술주권과 미래성장 동력확보를 위해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분야로 선정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 전지 ▲첨단 모빌리티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 보안 ▲인공지능(AI) ▲차세대 통신 ▲첨단 로봇·제조 ▲양자 등 12개 기술
PBS(Project-Based System)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자가 외부 연구개발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와 운영비를 충당하는 제도. 과도한 수주경쟁 및 단기성과 매몰 등의 폐해로 단계적 폐지 추진 중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 신기술의 성숙도와 상용화 가능성을 1단계(기초)부터 9단계(사업화)까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척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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